문명의 충돌 : THE CLASH OF CIVILIZATIONS 독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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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10. 18.
오래간만에 독서를 하기 위해 책장을 기웃거리다 한쪽 구석에 먼지와 함께 처박혀 있던 오래된 고서(?)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시절 교수님의 추천도서로 구입하여 읽다가 내용이 지루해서 끝까지 완독 하지 못했던 기억에 이 참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사실 이 책은 처음 출간 당시 상당히 비판적으로 평가되고 있었고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는데 9.11 테러 이후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상당히 주목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의 저자인 새뮤얼 헌팅턴은 미국 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세계적인 정치학자이다. 그런 그가 동서 냉전 종식 이후 달라진 세계 정치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시도로 이 책을 집필한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명제는 가장 폭넓은 차원에서, 문명 정체성에 다름 아닌 문화 또는 문화 정체성이 탈냉전 세계에서 전개되는 결집, 분열, 갈등의 양상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 책을 구성하는 다섯 부분은 이러한 중심 명제에서 정교하게 도출된 귀결 문이다. 총 5부로 나뉜 내용을 크게 정리해 보면,
1부: 사상 최초로 세계 정치가 다극화, 다문명화되었다. 경제와 사회의 현대화는 의미를 지닌 보편 문명을 낳지 못하고 비서구 사회를 서구화하는 데도 실패했다.
2부: 서구의 상대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아시아 문명의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이 확대되고 이슬람권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이슬람 국가들과 그 인접 국가들의 세력 균형이 위협받게 되면서, 비서구 문명들은 전반적으로 자기 고유문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3부: 문명에 기반을 둔 세계 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문화적 친화력을 갖는 사회들은 서로 협조한다. 한 사회를 이 문명에서 저 문명으로 이전시키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국가들은 자기 문명권의 주도국 혹은 핵심국을 중심으로 뭉친다.
4부: 보편성을 자처하는 서구의 자세는 다른 문명, 특히 이슬람,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국지적 차원에서는 주로 이슬람권과 비이슬람권 사이의 단층선 분쟁에서 '형제국들의 규합'을 통해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분쟁을 저지하려는 핵심국의 노력도 두드러진다.
5부: 서구의 생존은 미국이 자신의 서구적 정체성을 재인식하고 자기 문명을 보편이 아닌 특수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비서구 사회로부터 오는 위협에 맞서 힘을 합쳐 자신의 문명을 혁신하고 수호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문명 간의 대규모 전쟁을 피하려면 전 세계 지도자들이 세계 정치의 다문명적 본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문명과 문명의 가장 극적이면서 의미 심장한 접촉은 한 문명권의 사람들이 다른 문명권의 사람들을 정복하여 제거하거나 자기들 밑으로 복속시켰을 때 일어났다. 이런 식의 접촉은 짧은 기간 동안 폭력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기원후 7세기를 기점으로 이슬람과 서루, 이슬람과 인도 사이에서 비교적 지속성이 있고 때로는 강렬한 문명 간의 접촉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업적, 문화적, 군사적 교류는 같은 문명 안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인도의 경우에 따라 이민족(무굴인, 몽골인)의 침입을 받아 정복당하기도 하였지만, 두 문명 모두 자기 내부에서 기나긴 내전 상태를 경험하였다. 마찬가지로 그리스인은 페르시아인을 비롯한 여타 비 그리스인과 싸루고 교역하기보다는 자기들끼리 훨씬 더 많이 싸우고 교역하였다.
이슬람과 근대화는 충돌하지 않는다. 독실한 이슬람교도가 과학을 연구하고 공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첨단 무기를 활용할 수 있다. 근대화는 단일한 정치 이념이나 제도의 틀을 요구하지 않는다. 선거와 시민 결사 같은 서구 사회의 특징이 경제 성장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신앙으로서의 이슬람은 농부에게도 경영 컨설턴트에게도 만족을 준다. 샤리아는 근대화와 함께 농업이 공업으로, 농촌이 도시로, 사회적 안정이 사회적 유동으로 바뀌는 현상에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으며, 대중 교육, 첨단 통신, 새로운 운송 형태, 보건 진료 같은 문제에 대하여 월권을 행사하지도 않는다.
반서구주의 와 고유문화의 부흥을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이들도 전자 우편, 카세트, TV 같은 근대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대의를 선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근대화는 반드시 서구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비서구 사회는 자기의 고유문화를 포기하지 않고도, 서구의 가치, 제도, 관습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지 않고도 근대화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발전해 왔다. 서구 문화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구화를 가로막는 비서구 사회의 문화 요소에 비하면, 근대화를 가로막는 비서구 사회의 요소는 극히 작은 양이다. 브로델의 지적대로 근대화 혹은 '단일 문명의 승리'가 세계의 거대 문명들에서 유구한 역사와 함께 형성된 문화의 다양성을 종식시키리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40년간 지속된 냉전 시대가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지는 걸 보았다. 그래서 냉전의 종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자본주의의 승리로 인간의 가치관이 한번 동질화되어 버리면 그 속에서 더 이상의 변증법적 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변증법적 작용이 없으면 인간의 행위는 역사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냉전의 종식의 가치관의 통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탐구한 책이라고 본다. 이데올로기 대립에 억눌려 역사 흐름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던 문명 간의 갈등이 이제부터 수면 위로 터져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억누르는 힘이 강하고 억눌려 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그 분출도 힘찰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승리, 서구 문명의 세계 정복은 피상적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문명의 충돌이란 책을 읽으면서 어릴 때는 너무 지루하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는데 지금의 내가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읽었다는 데에 무척 뿌듯함을 느꼈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 등 가까운 나라의 내용은 더욱 집중해서 보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비록 사회 과학의 담론 형식을 엄격하게 지키지는 않았더라도 역시 저자의 학문적 성과가 바탕에 깔린 이야기다. 경제 외적 가치를 둘러싼 문명 간의 갈등이 냉전 이후의 세계에서 한몫을 맡으리라는 것은 학문 이전에 자명한 일이다. 과연 이것이 얼마나 주된 몫을 맡을지는 학술적 검토에 맡기더라도 하나의 측면으로서 살펴보는 것은 이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더욱이 저자의 관점에 따른다면 우리 주변의 4강은 네 개의 문명권, 그것도 가장 저력과 변수가 큰 문명권들을 대표한다. 냉전의 최전방에서 왔고 냉전의 논리에 최후까지 묶여 있는 우리가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도 가장 예민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 사회의 장래를 바라보는 데 하나의 중요한 시각을 열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찾아보니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과는 사뭇 상반된 내용으로 비교가 되는 하랄트 뮐러의 '문명 공존론'이라는 책이 자주 거론되고 있어 다음에는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읽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