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는 팩트에 기반한 영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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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남자’를 만든 감독 ‘이준익’>


 ‘왕의 남자’라는 대 흥행작을 만든 감독은 누구인지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자. 영화 ‘왕의 남자’를 만든 감독이자 연출은 바로 이준익 감독님이시다. 이준익 감독님은 다양한 영화들을 제작하셨고 그 작품들은 대부분 흥행, 대중성, 작품성을 모두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살펴보고 있는 ‘왕의 남자’를 제외하고도 이준익 감독님이 만든 작품들은 대부분 우리가 보거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작품들일 것이다. 그의 작품을 대표작들을 말해보자면, <황산벌, 2003>, <왕의 남자, 2005>, <님은 먼 곳에, 2008>, <평양성, 2011>, <사도, 2014>, <동주, 2015>, <박열, 2017> 등이 있다. 이런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사극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역덕’(역사 덕후. 역사에 흥미와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연합뉴스: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세계관을 드러내는 건 사건보다 사연” 그만큼 그는 역사에 관심을 두고 그 역사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이준익 감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은 처음부터 감독으로 바로 활동하던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원래 동양화를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얼마 안 가 학교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 삼아 영화 포스터 그리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일은 지금에서는 광고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이준익 감독은 영화감독으로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닌 영화 포스터, 즉 광고 마케팅으로 영화 쪽 일을 시작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감독이나 작가,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진 그는 그렇게 영화를 처음 배웠다고 한다. 책이 아닌 사람을 통해 영화를 배운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스물여덟에 회사를 만들어, 독립하고 일을 하며 감독이 되겠다는 다짐 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데뷔작은 어린이 영화인 <키드캅, 1993>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어린이 영화를 좋은 시선을 보지 않았고 안타깝게 이 영화는 실패작으로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첫 데뷔작에 실패한 그가 다시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찍은 영화가 바로 <황산벌, 2003>이었고 대박이 난 작품이라고 한다. 그 후 <왕의 남자, 2005>, <사도, 2014>, <동주, 2015>, <박열, 2017>까지 흥행을 했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이준익 감독이 어떻게 역사적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영화는 하나의 서사를 전제로 하는 스토리의 산물이라고 표현했다. 이렇듯 그는 스토리의 산물인 영화의 아버지는 문학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문학에서 서사 구조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서양 역사를 근간으로 한 대표적 대서사시이자 고대 서양의 그리스 로마신화부터 이어져 온 모험담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동양인이기에 동양의 서사는 언제부터 논리적으로 설파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시점부터 그의 작품은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 속에 서사적 콘텐츠가 숨어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우리 역사만 잘 들여다봐도 그 속에 깃는 철학과 문학, 미술, 음악을 발견할 수 있고 작품의 모티프도 자연스레 발견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렇듯 그는 역사를 통해 영화의 다양한 소재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우리 역사를 근간으로 한 시대극을 많이 제작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이준익 감독은 감독으로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을 통해 영화의 첫 시작을 배웠다. 또한, 동양의 서사의 첫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거기서 작품의 소재를 찾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그의 작품의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만든 ‘왕의 남자’는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으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그것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왕의 남자’ 는 논픽션인가? 픽션인가?>


  왕의 남자는 논픽션과 픽션 사이에 있는 ‘팩션 사극’이다. 바로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럼 ‘왕의 남자’는 역사적 사실을 어디까지 썼으며, 허구는 어디까지인가 그 부분에 대해 알아보자. ‘왕의 남자’는 연산군 때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연산군은 실존하던 인물로 조선의 10대 왕이었다. 이러한 연산군의 배경을 통해 ‘왕의 남자’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가 연산군의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역사 속 연산군은 성종의 맏아들이자 폐비 윤 씨의 아들이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고 초반에는 왕권 강화 등 업적을 남겼지만, 이후 폭군으로 바뀌었다. 그가 폭군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영향이 존재했겠지만, 자신의 어머니인 폐비 윤 씨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고 더욱 많은 폭정을 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왕의 남자’는 연산군의 일부 모습을 발취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를 살펴보면 연산군이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며, 광대들이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놀이로 만들어 보여주자 자기 아버지의 후궁이던 숙의 엄 씨와 숙용 정 씨를 죽이고 자신의 할머니인 인수대비도 밀쳐 쓰러트린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에도 실제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역사적 사실이 바로 ‘갑자사화’이다. 갑자사화란 연산군의 신화인 임사홍이 폐비 윤 씨의 일화를 연산군에게 밀고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사실을 알 게 된 연산군이 자신의 어머니인 폐비 윤 씨의 원한을 푸는 동시에 공신들의 탄압을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연산군은 숙의 엄 씨와 숙용 정 씨를 궁중에서 죽이고 그들의 소생을 귀양 보냈으며 그의 할머니인 인수대비의 병상에서도 난동을 부려 결국 인수대비가 세상을 떠났다. 또한, 자신의 어머니와 관련이 있는 모든 신화를 처형하였다. 이렇듯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영화에 어느 정도 가져와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녹수라는 인물도 실존 인물이다. 실제 장녹수는 연산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후궁이 된 여자이다. 후궁이 된 장녹수는 연산군의 음탕한 삶과 삐뚤어진 욕망으로 부추기며 자신의 욕망을 채웠으며 연산군의 총애를 발판 삼아 정치를 좌지우지했다고 전해진다. 그 정도가 모든 상과 벌이 그녀의 입에서 나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부분을 보면 영화에서의 장녹수와는 조금 다른 점이 보인다. 영화에서 장녹수는 왕의 사랑을 공길이에게 뺏겨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실제 장녹수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기보다 오히려 왕을 자신의 마음대로 주무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녹수의 캐릭터 성을 아예 바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른 역사적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영화에서 장녹수는 연산을 보고 ‘우리 아기’라고 하거나, 젖을 물리는 등 아이 다루듯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실록에는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렇듯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장녹수라는 실존 인물의 모든 면을 따오기보다 어느 정도의 한정적인 모습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에는 이 영화는 녹수와 연산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담기보다, 연산과 공길의 이야기를 더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영화는 장녹수라는 역사적 인물의 모든 면을 가져와 연출하기보다 일정 적인 부분만 가져와 연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망의 공길과 장생은 실존 인물이었나?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장생이라는 인물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다. 즉 이 극을 위해 탄생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공길이라는 인물은 실제로 존재하던 인물이다. 연산군 일기 60권 22장을 살펴보면 ‘공길이라는 광대가 왕에게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 있으랴”라고 말했다가 참형을 당했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한 마디로 영화는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단 한 줄에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를 보면 공길이라는 인물이 영화에서처럼 여리여리하고 여자처럼 이쁘고 소극적인 성격의 인물이 아니라, 임금 앞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배포 큰 남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길의 성격은 장생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연산군은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실제로 광대들과도 어느 정도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이렇듯 영화 ‘왕의 남자’는 실존하는 인물들과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들을 섞어서 만든 영화이며 실존 인물들의 성격을 영화에 맞게 각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더한 한마디로 팩트 안에 픽션을 가미한 팩션 영화이다. 또한, ‘왕의 남자’는 정통사극이 아니라 퓨전 사극이라 할 수 있다. 위의 설명들을 보면 이미 충분히 이 영화는 정통사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로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 등장하고 실존 인물들 또한, 성격이 조금씩은 각색되어 영화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 말고도 이 영화가 정통사극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요소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역사를 설명해주기 위한 내레이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통사극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내레이션이 다수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하여, 관객들에게 보다, 쉽고 빠르게 역사를 설명해주기 위해 내레이션이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왕의 남자’는 역사를 설명해주는 내레이션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을 통해 이 영화는 정통사극이 아니라 퓨전 사극이자 팩션 사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왕의 남자’는 연극 원작의 영화이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연극 ‘이’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며 거기에, 각색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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